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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제이유] 불필요하게 거창하다.
삭제일 : 2008. 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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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제일 : 2008. 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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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도서관에서 우연히 헤르만헤세의 에세이집을 발견한 적이 있다. '헤르만헤세, 이 사람 소설가 아니었나?' 좀 들어본 이름 같아서 호기심에 몇 줄 읽어보았다. 나는 그전까지 작가나 소설가들은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사람들만 하는 건줄 알았다.
그런데 이 사람의 글을 읽어보니 그게 아니었다. 그냥 자기 자신의 마음의 소리를 쭉 써내려 가는 것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아,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내면의 소리만 있으면 누구나 다 글을 쓰고 작가가 될 수 있는 거구나.' 읽는 이는 글의 기교에 감동 받는게 아니라 그 내용에 더 공감하고 즐거워할 뿐이라는 것을 알았다.
며칠 뒤, 그 사람이 쓴 '데미안'이라는 책도 읽어보게 되었다. 데미안, 평생 절대 읽을 일 없을 것 같았던 책이었다. 막상 보니까, 에세이를 먼저 읽어서 그런가 주변의 우려와는 달리 재밌었다.
그 데미안에 '카인의 후예들'이라는 말이 나온다. 동생을 살해한 카인에게 신은 7년간의 방랑을 명한다. 대신 이마에 표식을 남겨 아무도 그를 건드리지 못하게 한다.
살다보면 누구나 고통과 좌절에 빠질 때가 반드시 있다. 그렇지 않다면 인생이 아니다. 짝사랑에 가슴 아플 수도 있고, 남들이 날 인정해 주지 않아 실망할 수 도 있다. 돈 때문에 하고 싶은 걸 못할때도 좌절한다.
만약에 어떤 사람에게 같은 고통이 끝없이 찾아온다면, 그 사람은 문제를 회피하지 말고 고통을 직시하며, 자신의 진정한 모습과 대면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인생을 제대로 살고 싶다면 먼저 진정한 나를 발견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소크라테스도 말하지 않았던가 '너 자신을 알라'라고...
카인의 7년 방랑은 살인자라는 자신의 본모습을 직시하고 인정해가는 과정이었다. 그런 방황의 시간을 거쳐 인간은 좀 더 성숙해 진다. 그 모습이 얼마나 추악하건 더럽건 상관없다. 어차피 인간은 다 똑같다. 데미안을 비롯한 카인의 후예들은 그렇게 자신을 발견한 인간들이다.
헤르만헤세가 살아서 이 로봇들을 봤다면 아마 '데미안 로봇'이라고 좋아했을지도 모른다.
나의 로봇들은 데미안들이다. 한 발 더 나아가 이들은 한반도에서 새로운 인간의 가치를 열망하고 있다. 어리버리하게 20세기를 보낸 우리들은 아직 스스로의 가치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 일제와 미제를 추앙하던 남한인들은 이제 취업, 부동산, 재테크, 명품을 최고의 덕목으로 알고 있다. 순간의 만족을 위해 끝없는 좌절 속으로 기꺼이 또 들어가려고 한다. 그들은 가장 소중한 행복이 어디서 오는지 모른다.
나의 영화는 이 땅의 모든 데미안들을 깨우기 위한 것이다. 꽹가리를 치며 시끄럽게 깨울 것이다. 뭔가 재미난 일이 일어난 것처럼,,, 아이들이 마음껏 웃고 떠들게끔...
해는 벌써 떠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언제까지 구질구질하게 잠만 자고 있을 것인가.
그런데 이 사람의 글을 읽어보니 그게 아니었다. 그냥 자기 자신의 마음의 소리를 쭉 써내려 가는 것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아,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내면의 소리만 있으면 누구나 다 글을 쓰고 작가가 될 수 있는 거구나.' 읽는 이는 글의 기교에 감동 받는게 아니라 그 내용에 더 공감하고 즐거워할 뿐이라는 것을 알았다.
며칠 뒤, 그 사람이 쓴 '데미안'이라는 책도 읽어보게 되었다. 데미안, 평생 절대 읽을 일 없을 것 같았던 책이었다. 막상 보니까, 에세이를 먼저 읽어서 그런가 주변의 우려와는 달리 재밌었다.
그 데미안에 '카인의 후예들'이라는 말이 나온다. 동생을 살해한 카인에게 신은 7년간의 방랑을 명한다. 대신 이마에 표식을 남겨 아무도 그를 건드리지 못하게 한다.
살다보면 누구나 고통과 좌절에 빠질 때가 반드시 있다. 그렇지 않다면 인생이 아니다. 짝사랑에 가슴 아플 수도 있고, 남들이 날 인정해 주지 않아 실망할 수 도 있다. 돈 때문에 하고 싶은 걸 못할때도 좌절한다.
만약에 어떤 사람에게 같은 고통이 끝없이 찾아온다면, 그 사람은 문제를 회피하지 말고 고통을 직시하며, 자신의 진정한 모습과 대면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인생을 제대로 살고 싶다면 먼저 진정한 나를 발견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소크라테스도 말하지 않았던가 '너 자신을 알라'라고...
카인의 7년 방랑은 살인자라는 자신의 본모습을 직시하고 인정해가는 과정이었다. 그런 방황의 시간을 거쳐 인간은 좀 더 성숙해 진다. 그 모습이 얼마나 추악하건 더럽건 상관없다. 어차피 인간은 다 똑같다. 데미안을 비롯한 카인의 후예들은 그렇게 자신을 발견한 인간들이다.
헤르만헤세가 살아서 이 로봇들을 봤다면 아마 '데미안 로봇'이라고 좋아했을지도 모른다.
나의 로봇들은 데미안들이다. 한 발 더 나아가 이들은 한반도에서 새로운 인간의 가치를 열망하고 있다. 어리버리하게 20세기를 보낸 우리들은 아직 스스로의 가치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 일제와 미제를 추앙하던 남한인들은 이제 취업, 부동산, 재테크, 명품을 최고의 덕목으로 알고 있다. 순간의 만족을 위해 끝없는 좌절 속으로 기꺼이 또 들어가려고 한다. 그들은 가장 소중한 행복이 어디서 오는지 모른다.
나의 영화는 이 땅의 모든 데미안들을 깨우기 위한 것이다. 꽹가리를 치며 시끄럽게 깨울 것이다. 뭔가 재미난 일이 일어난 것처럼,,, 아이들이 마음껏 웃고 떠들게끔...
해는 벌써 떠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언제까지 구질구질하게 잠만 자고 있을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