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은 슬프고, 희극은 웃기다라고 말하면 딱 초등학생 수준이다. 나도 초딩때는 그런줄 알았다. 비극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것은 중학교 때 영화 '스텔라'의 마지막 장면을 보고 나서였다.
가난한 미혼모 스텔라(배트 미들러)는 딸의 장래를 위해 친아버지에게 딸을 보내고, 마지막에 딸의 결혼식을 밖에서 혼자 몰래 지켜본다. 이때 배트 미들러는 딸의 행복에 너무나 기뻐하고 있었지만, 이를 지켜보는 관객의 입장은 가슴이 뭉클해 지고, 슬퍼진다.
그럼 영화 스텔라는 과연 비극인가? 결코 아니다. 주인공 스텔라도, 딸도, 신랑도, 아버지도 모두 기뻐하며 끝이 났다. 이 영화를 슬프게 만드는 건 관객들의 편견이다. 결혼식장에 스텔라도 좋은 옷을 입고, 같이 들어와 있었어야 한다는... 그런데 어린 나에게는 이 영화가 전혀 슬프지 않았다. 노숙자 차림의 스텔라의 표정이 너무나 행복해 보였기 때문이다. 배트 미들러의 표정연기 하나가 나에게 화두 한가지를 던져준 것이다.
이때부터 비극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는데, 진정한 비극은 무엇이며, 고대 그리스인들이 왜 비극이라는 장르를 만들었을까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추측들을 해보기 시작했다. 흔히 비극이라고 말해지는 작품들(오이디푸스 이야기, 세익스피어의 4대 비극 등)을 읽어보며 공통점을 찾아보기도 했다.
약 1년뒤 내린 결론은 "비극은 주인공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바에 반하여 자신들의 인생이 흘러간다는 인생의 보편적 사실을 극단적인 슬픔을 통해 관객들에게 강렬하게 전달하기 위한 문학 장르"라는 것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서로 좋아해도 타인과의 관계, 환경 등의 요인에 의해 인생은 다르게 흘러갈 수 있다는 사실을 극단적인 슬픔으로 강조하면 비극이다.
어렸을 때 꿈이 선생님이었는데, 어른이 되니 자신도 원치않는 회사의 영업사원이 되있었다는 식의 흔히 들을 수 있는 얘기도 비극적 요소가 분명히 있다. 극단적인 슬픔이 강조되지 않았을 뿐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러한 평범한 진리를 강조하기 위해 비극이란 장르를 고안한 것이다.
다시 1년 쯤 뒤,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에서 우연히 아리스토텔레스가 내린 비극의 정의를 보게되었다. 정확한 표현은 기억나지 않지만, 본질적인 내용면에서는 차이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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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희극(comedy)인데, 희극은 비극보다 더 진보한 형태의 장르이다. 희극의 본질은 비극과 같지만, 테크닉 면에서 훨씬 앞서 있다고 볼 수 있다.
희극에 대해 알게된건 대학교때 우연히 TV에서 어떤 중년 남자의 실화를 듣는 순간이었다.
대충 이런 얘기였다. 어렸을 적 어느 추운 겨울날 산에서 아이들과 놀다가 전쟁때 버려진 폭탄(불발탄)을 발견하게 되었다. 아이는 얼마나 위험한 건지도 모르고 부모님 몰래 집으로 가져와서 부엌 아궁이 불속에 넣고 바로 앞에서 터지는 것을 지켜보려고 했다. 결국 그 자리에서 폭탄은 폭발하고, 아이는 팔다리를 잃고, 두 눈을 실명하게 되었다라는 얘기를 기대하며 조마조마했는데..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아 아이는 저녁밥을 먹으러 방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그리고 잠시 후 아궁이에서 폭발이 일어났고, 그 덕분에 겨울 내내 막혀있던 온돌이 뻥 뚤리게 되어 온가족인 따뜻한 겨울을 보냈다고 한다. 실화였다.
물론 이 얘기를 들으면서 나도 웃었지만, 웃으면서도 인생에서의 비극적 본질에 몸이 떨렸다. 인간은 자신도 모르는 단 한순간의 차이로 엄청난 슬픔과 기쁨에 휘둘릴 수 있는 수동적인 존재라는 사실..
웃는 순간 인간의 나약함과 슬픔이 함께 교차하는 것, 그래서 그 웃음이 인생의 화두와 여운으로 길게 남는 것..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코메디'이다.
희극은 순간적으로 정의할 수 있었다. "희극은 주인공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바에 반하여 자신들의 인생이 흘러간다는 인생의 보편적 사실을 웃음을 통해 관객들에게 강렬하게 전달하기 위한 문학 장르"였다.
숀 코네리 주연의 영화로 더 유명한 움베르트 에코 원작의 '장미의 이름'을 보면, 모든 사건의 중심이 되는 책 한권이 등장한다. 책을 본 사람들은 모두 살해되는데, 그 책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노년에 만든 희극집이라는 설정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비극에 정통했기 때문에 마지막에는 코메디를 직접 썼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진정한 코메디는 비극을 거쳐야 나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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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과 희극에 대해 실컷 떠들어댄 다음,, 이 글을 읽는 당신의 반응은?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구나 하고 넘어가나? 글 잘 읽었다 생각하고 끝나는 것인가? 아니면 추천이나 한 번 때려줘? 친구들한테 비극과 희극에 대해 앵무새처럼 얘기해 주나?
당신이 관객 입장이라면 언젠가는 진정한 비극이나 희극 작품을 만나야 하고, 창작자라면 죽기전에는 그러한 작품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이야기가 완성이 된다.
경험상 보면, 우수한 비극은 많이 있는데, 진정한 희극은 거의 없다. 찰리채플린의 '모던타임즈'가 인류역사상 거의 전무후무한 희극 작품인 것 같다. 빠르게 움직이는 컨베이어 벨트 속도에 맞춰 부품을 조립해야만 하는 근대 자본주의 사회의 서글픈 상황 속에서 웃음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상당한 통찰력과 기획능력을 필요로 한다. (거대 자본주의 사회속에서 인간의 부품화를 비극적으로 표현한 작품은 많이 있는 것 같다. 테네시 윌리암스의 '어느 세일즈맨의 죽음' 등등..)
내 경우는 창작자로서 작품을 만들어내는 입장인데, 다음 작품인 '코뮨' 이야기(관련 글: 코뮨(Commune) 로봇 프로젝트)를 정통 코메디로 시도해 보려고 한다. 얼마나 웃길지는 장담하지 못하겠다.
가난한 미혼모 스텔라(배트 미들러)는 딸의 장래를 위해 친아버지에게 딸을 보내고, 마지막에 딸의 결혼식을 밖에서 혼자 몰래 지켜본다. 이때 배트 미들러는 딸의 행복에 너무나 기뻐하고 있었지만, 이를 지켜보는 관객의 입장은 가슴이 뭉클해 지고, 슬퍼진다.
그럼 영화 스텔라는 과연 비극인가? 결코 아니다. 주인공 스텔라도, 딸도, 신랑도, 아버지도 모두 기뻐하며 끝이 났다. 이 영화를 슬프게 만드는 건 관객들의 편견이다. 결혼식장에 스텔라도 좋은 옷을 입고, 같이 들어와 있었어야 한다는... 그런데 어린 나에게는 이 영화가 전혀 슬프지 않았다. 노숙자 차림의 스텔라의 표정이 너무나 행복해 보였기 때문이다. 배트 미들러의 표정연기 하나가 나에게 화두 한가지를 던져준 것이다.
이때부터 비극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는데, 진정한 비극은 무엇이며, 고대 그리스인들이 왜 비극이라는 장르를 만들었을까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추측들을 해보기 시작했다. 흔히 비극이라고 말해지는 작품들(오이디푸스 이야기, 세익스피어의 4대 비극 등)을 읽어보며 공통점을 찾아보기도 했다.
약 1년뒤 내린 결론은 "비극은 주인공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바에 반하여 자신들의 인생이 흘러간다는 인생의 보편적 사실을 극단적인 슬픔을 통해 관객들에게 강렬하게 전달하기 위한 문학 장르"라는 것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서로 좋아해도 타인과의 관계, 환경 등의 요인에 의해 인생은 다르게 흘러갈 수 있다는 사실을 극단적인 슬픔으로 강조하면 비극이다.
어렸을 때 꿈이 선생님이었는데, 어른이 되니 자신도 원치않는 회사의 영업사원이 되있었다는 식의 흔히 들을 수 있는 얘기도 비극적 요소가 분명히 있다. 극단적인 슬픔이 강조되지 않았을 뿐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러한 평범한 진리를 강조하기 위해 비극이란 장르를 고안한 것이다.
다시 1년 쯤 뒤,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에서 우연히 아리스토텔레스가 내린 비극의 정의를 보게되었다. 정확한 표현은 기억나지 않지만, 본질적인 내용면에서는 차이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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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희극(comedy)인데, 희극은 비극보다 더 진보한 형태의 장르이다. 희극의 본질은 비극과 같지만, 테크닉 면에서 훨씬 앞서 있다고 볼 수 있다.
희극에 대해 알게된건 대학교때 우연히 TV에서 어떤 중년 남자의 실화를 듣는 순간이었다.
대충 이런 얘기였다. 어렸을 적 어느 추운 겨울날 산에서 아이들과 놀다가 전쟁때 버려진 폭탄(불발탄)을 발견하게 되었다. 아이는 얼마나 위험한 건지도 모르고 부모님 몰래 집으로 가져와서 부엌 아궁이 불속에 넣고 바로 앞에서 터지는 것을 지켜보려고 했다. 결국 그 자리에서 폭탄은 폭발하고, 아이는 팔다리를 잃고, 두 눈을 실명하게 되었다라는 얘기를 기대하며 조마조마했는데..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아 아이는 저녁밥을 먹으러 방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그리고 잠시 후 아궁이에서 폭발이 일어났고, 그 덕분에 겨울 내내 막혀있던 온돌이 뻥 뚤리게 되어 온가족인 따뜻한 겨울을 보냈다고 한다. 실화였다.
물론 이 얘기를 들으면서 나도 웃었지만, 웃으면서도 인생에서의 비극적 본질에 몸이 떨렸다. 인간은 자신도 모르는 단 한순간의 차이로 엄청난 슬픔과 기쁨에 휘둘릴 수 있는 수동적인 존재라는 사실..
웃는 순간 인간의 나약함과 슬픔이 함께 교차하는 것, 그래서 그 웃음이 인생의 화두와 여운으로 길게 남는 것..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코메디'이다.
희극은 순간적으로 정의할 수 있었다. "희극은 주인공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바에 반하여 자신들의 인생이 흘러간다는 인생의 보편적 사실을 웃음을 통해 관객들에게 강렬하게 전달하기 위한 문학 장르"였다.
숀 코네리 주연의 영화로 더 유명한 움베르트 에코 원작의 '장미의 이름'을 보면, 모든 사건의 중심이 되는 책 한권이 등장한다. 책을 본 사람들은 모두 살해되는데, 그 책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노년에 만든 희극집이라는 설정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비극에 정통했기 때문에 마지막에는 코메디를 직접 썼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진정한 코메디는 비극을 거쳐야 나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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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과 희극에 대해 실컷 떠들어댄 다음,, 이 글을 읽는 당신의 반응은?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구나 하고 넘어가나? 글 잘 읽었다 생각하고 끝나는 것인가? 아니면 추천이나 한 번 때려줘? 친구들한테 비극과 희극에 대해 앵무새처럼 얘기해 주나?
당신이 관객 입장이라면 언젠가는 진정한 비극이나 희극 작품을 만나야 하고, 창작자라면 죽기전에는 그러한 작품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이야기가 완성이 된다.
경험상 보면, 우수한 비극은 많이 있는데, 진정한 희극은 거의 없다. 찰리채플린의 '모던타임즈'가 인류역사상 거의 전무후무한 희극 작품인 것 같다. 빠르게 움직이는 컨베이어 벨트 속도에 맞춰 부품을 조립해야만 하는 근대 자본주의 사회의 서글픈 상황 속에서 웃음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상당한 통찰력과 기획능력을 필요로 한다. (거대 자본주의 사회속에서 인간의 부품화를 비극적으로 표현한 작품은 많이 있는 것 같다. 테네시 윌리암스의 '어느 세일즈맨의 죽음' 등등..)
내 경우는 창작자로서 작품을 만들어내는 입장인데, 다음 작품인 '코뮨' 이야기(관련 글: 코뮨(Commune) 로봇 프로젝트)를 정통 코메디로 시도해 보려고 한다. 얼마나 웃길지는 장담하지 못하겠다.

